< 죽어도 되는 아이
    표지

     

    죽어도 되는 아이

     

     “반드시 태어나야만 하는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세상에 죽어도 되는 아이는 없다.”

     

     

     

    프롤로그

    1. 계약

    2. 너와 나의 연결 고리

    3. 미필적 고의

    4. Ice Breaking

    5. 학교 가는 길

    6. 대화

    7. 과거로부터 온 아이

    8. 재앙

    9. 동창회

    10. 빌라

    11. 피크타임

    12. 미란다

    13. 돌이킬 수 없는

    14. 협상

    15. 비도 오고 그래서

    16. 두 개의 의뢰

    17. 전원주택

    18. 고백

    19. 절체절명

    20. 취조

    21. 죽어도 되는 아이

    22. Business Trip

    23.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24. 필연을 가장한 우연

    죽어도 되는 아이

     

    프롤로그

     

     

    도끼다.

    날쌘 칼이 아니라 무식하게 생긴 손도끼다.

    도끼는 칼과 다르게 오로지 휘두르는 동작밖에 할 수 없다. 권투로 치면 돌려 치는 훅과 같다.

    놈은 내 머리를 노리고 도끼를 있는 힘껏 휘둘렀고 나는 바깥쪽으로 고개를 젖혀서 피했다. 도끼와 함께 내 머리 옆으로 지나간 놈의 손목을 잡아당겨 바깥쪽으로 비틀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가 나오듯 놈의 손에서 도끼가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도끼를 잡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대로 내리찍었다. 놈의 다리였다.

    “아악!”

    다친 곳을 반사적으로 부여잡는 놈의 손도 내리쳤다. 손목을 노렸지만 잘못 맞는 바람에 애꿎은 손가락 두 개만 떨어져 나갔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은 놈은 다리를 질질 끌며 어딘가로 기어가면서도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애 때문에 그래? 네 애도 아니잖아!”

    도끼질은 번거로운 게 하나 있다. 필요 이상으로 피가 많이 튄다는 점이다.

    “넌 애 없잖아요!”

    겁을 먹어서 말이 헛나온 건지 말하는 도중에 예의가 생겨난 건지 모르지만 놈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넌 애 없잖아요…….”

    말끝에 울음을 터뜨리는 놈에게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까. 이건 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고 하면 알아들을까? 이런 양아치가 신뢰라는 단어 뜻을 알기는 할까?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놈에게서 허세가 빠져나가고 간절함이 대신 자리했다. 흐느끼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난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엎어져 있던 놈의 눈에 다시 독기가 서리며 악에 받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이 개새끼야! 살려 줘!”

    이렇게 당당하게 살려 달라는 놈은 처음이다.

    “그럴 거야.”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내 말에 놈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살인은 피할 생각이거든.”

    도끼를 빙글 돌려 도끼머리로 놈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히며 넘어가더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빗맞은 것이다.

    “쯧.”

    숨 쉬는 거 빼고는 뭐든 오랜만에 하면 실수를 하는 법이다. 톱질하는 나무를 밟듯 놈의 종아리를 밟아 고정시키고는 도끼날을 아킬레스건에 조준했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두세 번 잰 다음 내리찍었다. 팽팽했던 힘줄은 끊어진 고무줄처럼 몸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비명 소리가 너무 컸기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놈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도낏자루로 턱을 후려쳤다. 고개가 돌아가고 이빨이 몇 개 부러져 나왔지만 정신을 잃은 놈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몇 개의 객실을 터서 꾸민 모텔 VIP 룸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소파가 있는 거실에는 신체에 영구적 손상을 입은 세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맹세컨대 이런 풍경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미성년자가 얽힌 일이었기에 19금 사태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윤지야! 김윤지!”

    방을 돌아다니며 애의 이름을 불렀지만 빈집처럼 기척도 없었다. 스마트폰 앱은 여전히 그 애가 이곳에 있다고 빨간 점으로 나타내고 있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아이는 이곳에 처음부터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밖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구둣발 소리가 무더기로 들리는 순간 19금 사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손잡이에 천을 감은 회칼부터 보였다. 칼을 든 놈의 머리가 보이자마자 그쪽으로 도끼를 날리고 놈 쪽으로 내달렸다.

    도끼가 머리에 박힌 놈이 쓰러지기 전에 놈의 손에서 회칼을 빼앗아 뒤이어 들어오는 놈의 허벅지를 베었다.

    주저앉는 놈의 목을 회칼로 그으며 그다음 놈이 휘두르는 쇠파이프를 피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느라 몸이 돌아간 놈의 목에 칼을 깊숙이 꽂았다가 비틀어 뽑았다.

    연속 세 명이 당한 것을 본 무리들은 더 이상 안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금세라도 덤빌 것처럼 스텝을 밟고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지만 들어오진 못했다.

    다수를 상대할 땐 좁은 곳이 유리하기에 다른 상황이라면 이대로 버텼겠지만, 시간이 없는 건 놈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제야 놈들이 겁이 나서 안으로 못 들어오는 게 아니라 날 여기에 붙잡아 두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놈들은 시간을 벌고 있는 중이고, 시간을 버는 목적은 내 머릿속에 한 가지만 떠올랐다. 윤지를 어딘가로 옮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방금 아킬레스건을 잘린 놈 말고 다른 놈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등신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이 개새끼들이…….”

    홧김에 욕설은 튀어 나갔지만 뚫고 나가기엔 놈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7층에서 뛰어내려서 살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뒤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19금 이야기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제일 앞에 선 탓에 권총을 제일 먼저 본 놈이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뒤에 몰려 있는 동료들 때문에 도망치질 못했다. 총을 겨눈 것도 아닌데 들고 있는 것만 보고 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소리 질렀다.

    “총! 총! 총이라고 총!”

    그 고함 소리에 놈들은 물 맞은 개미처럼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도 놈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뒤쫓아 오는 내 모습에 놈들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고 달리다가 넘어진 놈은 몸을 굴려 구석으로 기어가서 웅크리고 앉았다.

    “살, 살려 줘! 살려 달…….”

    살려 달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놈 앞을 지나쳐 갔다.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윤지를 찾는 게 급선무니까.

    나를 뒤에 둔 놈들은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미친개를 만난 것처럼 도망치다 저희끼리 엉켜서 넘어지고 굴렀다.

    넘어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계단을 가로막은 놈들을 밟고 아래로 계속 달렸다.

    그때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공을 세우려는 놈은 어느 무리에나 하나씩 있다.

    칼을 들고 뒤에서 달려드는 놈의 얼굴에 총을 쏘았다. 총소리는 계단을 타고 건물 전체로 퍼졌다.

    뒤통수가 반쯤 날아간 채 쓰러지는 놈의 꼴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모텔 밖으로 뛰어나오자 이미 차 한 대는 빠져나갔고 남은 차 한 대가 급히 출발하려고 했다. 빌어먹게도 바로 내 차였다.

    난 제자리에 서서 정문으로 치고 나가는 내 차의 운전석을 향해 조준사격을 했다. 총소리와 함께 앞 유리에 피가 튀는 게 분명 보였지만 차는 동요하지 않고 출발했다. 빗맞은 모양이다.

    뒤에서 들리는 기척에 돌아서서 몇 명을 더 해치우고, 모텔 주차장 밖으로 뛰어나가 저만치 가고 있는 차를 향해 또다시 총을 쏘았다.

    총소리가 주변 산에 울려 퍼졌고 차는 미친 듯이 앞으로 돌진해 나갔다. 조금만 더 멀어지면 사정거리를 벗어나기 때문에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차는 그대로 직진을 하더니 나무를 거세게 들이받고는 멈춰 섰다.

    내 차가 부서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제발 엔진만이라도 멀쩡하기를 빌었다.

    차에 거의 다다랐을 때 뒤에서 엽총 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난 뒤를 보지도 않고 응사를 하며 운전석을 열었다. 머리를 맞은 놈이 뇌수와 피를 질질 흘리며 차 안을 잔뜩 더럽히고 있었고, 조수석에 앉아 있었을 여자는 앞 유리를 뚫고 튀어 나가 상체가 보닛 위에 걸쳐 있었다. 애꾸눈처럼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여자의 남은 눈에서 생명의 기운은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엽총 소리에, 급한 대로 운전석의 시체를 끌어내리고는 차에 올라앉아 시동을 걸었지만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총소리와 함께 몇 장 남지 않은 자동차 유리창과 미등이 터져 나갔다. 유리 조각들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내 소망과 달리 엔진도 부서진 게 분명했다.

    “염병할!”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앞서 도망간 차는 보이지도 않아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웅크리고 있자 기고만장해진 엽총 사수는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처럼 나를 향해 걸어오며 총을 쏘았다.

    난 웅크린 자세 그대로 차에서 내려 쪼그리고 앉아 놈을 향해 조준했다.

    놈의 뒤쪽 모텔 주차장에 몇 놈이 더 있는 걸 확인하고는 안심하고 놈의 얼굴을 조준했다.

    권총의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건 옛말이다. 요새 권총은 성능이 좋아져 이 정도 거리의 조준사격은 웬만한 소총보다 낫다.

    첫 발은 빗나갔지만 두 번째 총알은 놈의 목을 관통했다. 놈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모텔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남은 놈들이 도망쳐 버리면 윤지의 행방을 캐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믿었던 엽총 사수가 죽는 것을 본 놈들은 말 그대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텔이 있는 주변엔 숲뿐이었지만 거친 수풀을 잘도 헤쳐 나갔다.

    “동작 그만! 동작 그만!”

    난 소리를 질렀지만 놈들이 내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그 자리에 서서 도망치는 놈들 머리 세 개를 더 날리고 나서야 말이 먹혔다.

    “동작 그만!”

    남은 세 명이 얼음땡 놀이를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난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눈 채 조금씩 다가서며 물었다.

    “윤지 어디로 데려갔어! 어디로 데려갔어!”

    한 놈이 몸을 심하게 떨었다. 더 늦기 전에 도망칠지 말지 내적 갈등을 겪는 게 분명해 보였다.

    난 권총의 탄창을 갈아 끼우는 척 빼내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탄창을 다시 끼우고 총을 쏘는 데까지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걸 지켜본 남은 두 명은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은 울었다.

    “이리 와.”

    놈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내 말대로 다가왔다. 울던 놈은 거의 기어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살려 주세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남은 한 놈도 그 옆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내가 두 명만 남긴 이유는 한 명이나 여러 명보다는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가 이럴 때 이용하라고 나온 이론은 아니지만, 이 경우엔 따로 격리시켜서 질문하는 것보다 모아 놓고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권총의 노리쇠를 뒤로 당기며 말했다.

    “먼저 말하는 놈만 살 수 있어. 윤지 어디로 데려갔어?”

    울지 않던 놈이 말했다.

    “우리는 정말 모릅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다. 먼저 말하는 놈이 아니라 정답을 먼저 말하는 놈이 살 수 있는 건데.

    모른다고 답한 놈의 이마에 총을 쐈다. 마지막 총알을 뱉어 낸 권총은 슬라이드를 뒤로 젖히며 작동을 멈췄다. 하지만 그걸 못 보았는지, 동료의 피를 뒤집어쓴 울보는 아예 통곡을 하며 살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난 마치 총알이 있는 것처럼 슬라이드만 슬쩍 밀고 놈에게 말했다.

    “네가 대답하지 않으면, 널 쏘고 나서 모텔 7층까지 올라가서 기절해 있는 놈들을 깨워 이 짓을 또 해야 해. 그러면 서로에게 좋을 게 없잖아. 아는 거 있으면 말해.”

    “진짜 모…….”

    말을 하려던 울보는 옆에 죽어 있는 시체를 힐끗 보고는 말을 멈추고 흐느껴 울었다. 내가 말했다.

    “주변을 봐. 여기 널린 시체들이 얼마 만에 발견될 것 같아?”

    나를 따라 울보의 시선이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러브호텔이지만 이렇게 인적이 드문 산골에 지어 놓으면 불륜 커플들이 찾아올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현장까지 널 데려갈 거니까 말 나오는 대로 씨불이지는 말고.”

    울보가 울먹이며 말했다.

    “정말 몰라요!”

    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놈의 이마에 빈총을 갖다 댔다. 놈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하지만 누가 알고 있는지 알아요!”

    “누군데?”

    “매니저요!”

    매니저라면 내게 아킬레스건을 잘린 놈이다. 결국 7층에 다시 가야 할 모양이었다. 그럼 이놈을 살려 둘 이유가 없으니까…….

    “도, 독한 놈이라 말 안 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매니저가 독한 놈인 건 나도 알고 있었기에 울보의 말에 솔깃했다.

    “어떻게?”

    “아들이 어느 유치원에 다니는지 알아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살기 위해 유치원생 목숨을 팔아먹는 놈이 지금의 내게는 더없이 반가웠다. 놈은 묻지도 않은 말을 보탰다.

    “얼마 전에 부탁해서 유치원에 데려다준 적이 있습니다. 아들 얘기 꺼내면 다 말할 겁니다. 양아치라도 자기 새끼는 끔찍하게 여기는 새끼거든요.”

    반갑다, 양아치 새끼야.

    “일어나.”

    희망의 동아줄을 잡은 놈은 벌떡 일어나 모텔을 향해 앞장섰다.

    그때 7층 창문이 깨지며 누군가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혔다.

    반사적으로 빈총이란 것도 잊고 위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살폈다. 하지만 떠밀린 것인지 스스로 뛰어내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확인하라는 뜻으로 울보의 다리를 발로 툭 찼고, 울보는 조심스럽게 시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누군지 알아볼 정도로 가까워지자 울보의 흐느낌이 커지기 시작했다. 들썩이는 울보의 어깨 너머로 시체를 확인했다. 매니저였다.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한숨부터 튀어나왔다. 동아줄이 끊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울보는 세상이 무너진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순간적으로 그 면상이 꼴 보기 싫어 권총 손잡이로 후려쳤다.

    “아악!”

    주저앉은 놈의 얼굴을 무릎으로 차서 뒤로 쓰러뜨리고는 얼굴을 권총으로 내리쳤다. 참고 있던 짜증이 폭발했기에 좀처럼 멈춰지질 않았다.

    울보의 몸이 축 늘어지고 나서야 숙였던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았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막 솟아오르던 해는 벌써 중천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아주 작은 단서라도 나와 주길 바라며 매니저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 앞에 뭔가가 툭 떨어졌다. 팔찌였다. 내가 직접 아이의 손목에 채워 줬던 팔찌. 구슬 일부가 파손된 것 말고는 멀쩡한 모양 그대로였다. 우려했던 일이 터진 것이다.

    난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팔짱을 낀 채 내려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놈은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을 활짝 열고는 2층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평범한 체구와 흔한 얼굴을 한 놈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밝은 곳에서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지만 놈이 누군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불청객, 바로 그놈이다.

    놈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소매 아래로 뻗어 나온 팔 근육은 장식으로 발달시킨 근육이 아니었다. 난 꿈쩍도 하지 않고 눈싸움을 하듯 노려보며 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곳으로 통하는 진입로는 하나뿐이었고, 이곳에서 빠져나간 놈은 있어도 들어온 놈은 없었다. 그 말은, 내가 모텔에서 난리를 치고 다니는 동안 모텔 어딘가에 앉아 조용히 있었다는 얘기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더욱 겁이 났다. 놈은 왜 이제 모습을 드러낸 걸까? 모텔 매니저를 창밖으로 던져 버린 것도 저놈의 짓일까?

    “윤지 어디 있어? 어디 있는지 말하면 살려 준다. 당장 말하지 않으면 너희 부모는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씨를 말려 버릴 테니까 당장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말을 뱉은 직후에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발연기를 하는 배우 같은 대사에 본능적으로 창피함을 느꼈기 때문에.

    놈은 말없이 바지 한쪽을 걷어 올렸다. 그러더니 발목에 차고 있던 홀스터에서 정강이 길이만 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손잡이에 안전핀이 달려 있는 나이프가 보이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놈이 근육을 꿈틀거리며 칼을 움직일 때마다 안전핀이 소리를 내며 덜렁거렸고, 그 소리에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며 도망치려면 지금 도망치라는 듯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렸다.

    놈은 타들어 가는 내 속도 모르고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내며 씩 웃어 보였다.

    안전핀에 손가락을 걸고 빙글빙글 돌리던 그놈은 칼끝으로 자신과 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어제는 꽤 정신없었지? 초면에 통성명도 못 하고.”

    놈의 목소리는 얇은 톤이었지만 내가 주눅 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놈이 말을 이었다.

    “돌려줄 물건도 있고 해서 우리 두 사람만 남기를 기다렸어.”

    놈은 셔츠 단추를 풀어 앞섶을 활짝 펼쳐 보였다. 불룩 튀어나온 가슴 근육 아래로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고 옆구리 쪽엔 피가 배어 나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놈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 내용물을 쏟아 냈다. 칼 두 자루와 소음기가 달린 권총 한 자루가 바닥에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놈으로부터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잃어버렸던 내 물건들이었다.

    놈은 그중에 긴 칼을 집어 내 발 앞에 툭 던지고는 내가 들고 있는 팔찌를 턱으로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이제 애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또 도망칠래?”

    떨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딱딱거리며 내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놈의 눈치를 보며 발 앞에 있는 칼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믿을 만한 것이라고는 이 칼밖에 없었기에 꼭 쥐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서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내 신경은 놈이 들고 있는 안전핀 달린 나이프에 온통 쏠려 있었다. 양옆으로 길게 홈이 파여 있는 칼날의 형상만으로도 숨이 가빴다. 놈이 저 칼을 갖고 있는 한 내 방검 셔츠는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놈은 나이프의 안전핀에 손가락을 끼운 채 방금 쏟아 놓은 권총을 집어 들고 탄창을 빼냈다. 이어 탄창에서 보란 듯이 총알을 하나씩 빼내며 말했다.

    “칼 좀 쓰나? 한번 겨뤄 보고 싶은데.”

    낭만주의자다. 나같이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놈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더럽고 비겁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에게 낭만주의자들은 늘 패배해 왔으니까.

    총알을 다 빼낸 놈은 권총의 슬라이드를 뒤로 당겨 약실에 남은 마지막 총알마저 튕겨 내고는 권총을 바닥에 툭 던졌다. 그리고 마치 시합을 시작하자는 듯 칼을 세워 들었다. 조급함에 빠르게 흘렀던 내 시간이 멈춰 버린 순간이었다.

    죽어도 되는 아이

     

    1. 계약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납세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그건 나처럼 사람을 죽여 가면서 얻은 재산을 가진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국세청의 눈에 띄었다간 개털 되는 데까지는 3일이면 충분하고 내 정체가 까발려지는 건 덤이니까.

    하지만 절차가 더럽게 복잡하기 때문에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몇 개 항목에서 누락을 했고, 수습을 하다 잘 되지 않아 결국 세무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해결하는 데 6개월이나 걸릴 줄 알았다면 안 맡겼을 것이다.

    실탄사격장에서 사격 점수가 꽤 높게 나왔기에 한껏 좋아졌던 내 기분을 망친 건 바로 이 세무사였다.

    ─ 사장님, 세무법인 FYM의 박 세무사입니다.

    FYM. ‘For Your Money’라는 노골적인 회사 이름만큼 이 양반은 노골적으로 영업을 했다. 거북할 정도로 한 톤 높은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만으로도 용건을 알 수 있었다.

    “다 끝났습니까?”

    ─ 네, 오늘 완전히 마무리됐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고생은요, 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전화를 끊겠다는 의도의 마무리 인사였는데 눈치 없는 세무사가 말을 받는 바람에 한마디 더 해야 했다.

    “네, 그럼 이만.”

    ─ 사장님! 전에 말씀드렸던 것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뭘 말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저희 FYM에 세무 관리 맡기는 거 말입니다. 건물주분들하고 상의 좀 해 보셨습니까?

    이제 생각났다.

    “그냥 지금처럼 하겠다고 하시네요.”

    ─ 네? 아휴, 이것 참, 그런 분들일수록 이 세테크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건물주분들 만나게만 해 주시면 제가 한번 직접 말씀드려 봐도 될까요?

    응, 안 그래도 돼. 넌 이미 건물주와 통화 중이니까.

    “죄송합니다.”

    내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걸 감지라도 한 듯 세무사가 다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 저희 대표님이 직접 찾아뵐 수도 있습니다. 검사 생활을 오래하셔서 법조계는 물론 세금 쪽에서도 장강순 변호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맥이 빵빵한 분이니까 알고 지내시면 좋으실 것 같은데.

    “필요하면 그때 연락드리죠.”

    ─ 아, 뭐 정 그러시면 어쩔 수 없네요.

    시크한 내 대답에 아쉬워하던 그의 목소리가 금세 힘을 얻어 높은 톤으로 말을 이었다.

    ─ 이건 우리 방 사장님께만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는 고객이 원하시면 밝은 일 어두운 일 가리지 않습니다. 당연히 보안도 철통처럼 지켜질 거고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도와드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사’ 자가 붙은 전문가들이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전문 지식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폭탄을 만든 사람들이 최고급 두뇌들이었던 것처럼.

    전화를 끊고 휴대폰에 저장해 둔 ‘해야 할 일’ 목록에서 ‘세금 납부’ 목록을 삭제했다. 수개월에 걸친 찜찜한 이벤트 하나가 종료된 것이다.

    약간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햇볕이 잘 드는 서재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에 책을 읽는 이 평화는 20분 만에 또다시 깨졌다.

    “오빠, 오빠!”

    마누라가 하이 톤으로 저렇게 부르면 부탁할 거리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도 내가 끔찍하게 싫어할 만한 부탁. 저래 놓고 내가 거절하면 말도 섞지 않겠지. 그게 무슨 부탁이냐.

    마누라는 서재까지 달려와 내 앞에 앉으며 한동안 웃는 낯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생글거리며 웃는 낯에 침은 물론 주먹도 날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못 본 체하며 책을 계속 봤지만 책 위에 손을 얹어 장난스럽게 방해하는 바람에 읽을 수가 없었다. 마누라는 이걸 애교 섞인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마누라만 아니었으면 그 손목 진작 날아갔을 거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이클 타는 걸 좋아했던 마누라가 사이클 연맹 심판이 됐다. 대충 사는 것 같아도 할 땐 하는 걸 보면 참 기특하기도 하다. 그 기념으로 이혼녀와 사이클 테마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다. 그런데 어디로 여행 가는지 말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여행 어디로 가?”

    “어허, 거참 집요하네.”

    마누라가 살짝 정색하는 모습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안 알려 주겠다는 거야?”

    “언니가 불편해한다니까.”

    물을 때마다 ‘안 알려 줌!’ 이렇게만 외치기에 장난인 줄 알았다.

    “진짜 안 알려 준다고?”

    “저번처럼 몰래 따라오려고? 이혼녀 앞에서 남편 있다고 유세할 일 있어? 그 언니 2년 전에 이혼한 거 몰라?”

    이혼을 했는지 사별을 했는지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겠니.

    마누라가 저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의처증 있는 놈으로 들리겠지만, 맹세코 딱 한 번 그랬다. 마침 마누라 생일이 끼어 있어서 여섯 명이나 되는 일행 전체에게 비싼 호텔 밥까지 사 먹이면서 마누라 앞에서 멋 한번 부려 보고 싶었던 거였다. 그게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이야.

    “아무리 비밀이라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도시 정도는 알려 줘야 할 거 아냐.”

    “걱정 안 해도 돼. 그 언니가 인맥이 좋아서 나라마다 도와줄 사람들 다 있대.”

    “그래서, 진짜 안 알려 준다고?”

    집요한 내 요청에 마누라는 한숨을 내쉬고는 선심 쓰듯 말했다.

    “그르노블, 제노아, 사할린. 됐냐? 애처럼 징징거리기는.”

    “그르노블이면 프랑스고, 제노아는 이탈리아고…….”

    귀에 익은 도시 이름을 되뇌다 입을 다물었다. 마누라는 내 반응을 보고 뭔가 눈치챈 것처럼 물었다.

    “혹시 거기 건물주들 사는 데 아니야?”

    사실 내가 관리하고 있는 건물들은 내 소유다. 하지만 떳떳한 일로 얻은 재산이 아니었기에 안전을 위해 위장을 할 필요가 있었고, 아무도 깊이 캐낼 수 없도록 있지도 않은 건물주들을 만들어서 해외로 이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누라에게는 아는 형님들 건물 관리해 주는 거라고 둘러댔기에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누라가 혼자 생각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작년에 출장 간 곳도 사할린 아니야? 맞지? 보고해야 한다고 1년에 한 번씩은 꼭…….”

    말을 하던 마누라는 갑자기 도끼눈을 뜨며 돌변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출장 핑계 대고 따라오면 죽는다, 진짜! 알겠어?”

    이쯤 되면 더러워서 안 따라간다. 나도 약이 올라서 깐족거리는 말투가 나갔다.

    “남편 직장 일이 그렇게 궁금했냐? 그냥 말을 하지 그러셨어요. 그럼 다 알려 줄 텐데.”

    “웃기고 있네! 스케줄은 언니가 짰거든?”

    그 언니라는 여자를 본 적은 없지만 참 짜증 나는 스타일이란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아마 생긴 것도 보나마나 맘에 안 들게 제멋대로 생겼겠지.

    “사할린은 뭐하러 가냐? 거기 곰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곰한테 건설 인부 다섯 명 죽은 거 봤거든.”

    마누라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직접 봤어?”

    “유튜브.”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마누라가 대꾸했다.

    “쯧, 곰 그까짓 거 달려들면 바로 죽방을 날리지, 뭐.”

    바로 이분이 마누라다. 내가 몇 마디 했다고 여행지를 바꾸면 마누라 가죽을 뒤집어쓴 외계인이 분명하다. 내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볼 것도 없는 동네를 뭐하러 돈까지 쓰면서 가는지 모르겠네.”

    사실 난 사할린 외곽의 한적한 분위기를 명풍경으로 꼽는다. 내가 지금 이러는 건, 서면 상으로만 존재하는 건물주 소재 도시에 마누라가 가는 것 자체를 말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속이 불편하니까.

    마누라는 도끼눈으로 말했다.

    “거참, 오늘따라 말 더럽게 많네. 사할린에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따위 발언은 그분들한테 예의가 아니지, 인간아.”

    뭔가 순식간에 질 떨어지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어이가 없네. 이쯤 되면 말을 돌려야 했다. 말이 길어지는 만큼 내가 욕먹는 시간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한테 뭐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마누라는 급히 도끼눈을 풀고 다정한 목소리로 또다시 불렀다.

    “오빠, 오빠.”

    “그만 부르고 말씀하시라고요.”

    “태도 봐라, 태도. 내 할 말이 뭔 줄 알고 이렇게 거만하지?”

    마누라에게 할 말이란 부탁을 의미했다.

    “부탁할 거 있는 거잖아.”

    “서운하네. 누가 들으면 오빠한테 심부름만 시킨 줄 알겠다.”

    결혼 생활 내내 그랬다는 걸 왜 나만 기억하고 있는 걸까.

    “부탁할 거 있는 거 아니야?”

    “부탁 맞아. 역시 센스쟁이.”

    센스가 아니다. 이런 패턴을 13년 동안 겪으면 아이큐 40만 넘어도 알게 된다.

    “뭔데?”

    “애 좀 하나 봐줘.”

    농담이라 생각하고 농담으로 받아쳤다.

    “숨겨 놓은 자식이 있었는지 몰랐네. 몇 살이야?”

    “열여섯 살이야.”

    “와, 진짜 꼴 보기 싫은 나이네. 그런 애를 언제…….”

    마누라의 표정을 보고 난 말을 멈췄다. 마누라의 얼굴은 농담하는 표정이 아니었으니까.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마누라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더욱 적극적으로 말했다.

    “이번에 여행 같이 가는 언니 딸인데, 봐줄 사람이 없어서 갈등하더라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처해 왔다. 차분하게 물었다.

    “애 아빠는 뭐 하고? 이혼했어도 애는 봐줄 수 있잖아.”

    “천하의 개자식이라 이혼한 후에 얼굴 본 적이 없대. 그냥 연을 끊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양육비 같은 건 아예 생각도 안 했고.”

    개자식이든 뭐든 자기가 싼 자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연락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자기 자식인데.”

    “애를 볼모로 해서 돈을 뜯어 갈 정도로 악랄하고 추잡한 인간이라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대.”

    개자식이라도 자기 자식은 예뻐할지 모른다.

    “그래도 막상 부탁하면…….”

    마누라가 매섭게 노려보고 있어서 입을 닫았다. 노려보는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열여섯 살짜리를 내가 봐줄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네. 그 애가 싫어할 수도 있잖아. 사춘기라서 예민할 텐데.”

    노려보던 마누라는 화를 삭이는 듯 큰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맡길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나한테 다 부탁을 했겠냐? 안 그래?”

    그러니까 애초에 그게 문제라는 거다. 분명 너한테 부탁한 일이 왜 나한테 넘어오는 거냐고.

    내가 물었다.

    “집수리가 얼마나 걸리는데?”

    “3주.”

    여행도 3주고 공사 기간도 3주다. 기간이 딱 떨어진다. 집 보수를 핑계로 자식을 남의 집에다 떠넘기고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개수작이었다.

    마누라가 달래듯 말을 이었다.

    “그래 봐야 딱 3주야. 3주, 그거 금방 지나간다니까.”

    마누라 없는 3주라면 금방 지나가겠지.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춘기 애새끼 뒤나 닦아 주며 지내는 3주는 차원이 다르다. 하루가 1년, 아니 10년 같을 수도 있는 거다.

    마누라가 애써 입꼬리를 올려 기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태도가 상당히 맘에 들지 않지만 억지로 참아 줄 때 나오는 표정이다. 슬슬 말대꾸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살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학교나 학원 차로 실어 나르는 것만 하면 될 테니까.

    마누라가 그 기괴한 표정에 미소만 하나 추가해서 상냥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열여섯 살이야. 자기 앞가림 다 하는 애라고. 그러니까 그냥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게만 하면 돼.”

    뭐라고? 나 방금 굉장히 무서운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설마 잘못 들은 거겠지?

    “어디서 지낸다고?”

    “우리 집.”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튕겨질 정도로 그렇게 벌떡.

    “우, 우리 집?”

    마누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의자를 세워 놓으며 대답했다.

    “빈방 있겠다, 층도 나눠져 있겠다, 뭐가 문제야?”

    “잘 알지도 못하는 애를 내 집에 두겠다고?”

    “네 집이 아니고 우리 집.”

    마누라는 강조하듯이 나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우, 리, 집. 우리 집의 지분 절반은 내 거니까 애를 데려오든 말든 그것도 내 맘이겠지? 그렇지?”

    책에서 본 ‘절망의 쓰나미에 인생이 휩쓸려 가 버렸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마누라는 격려하듯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집 보수하느라 마땅히 지낼 데가 없어서 그런 거야. 그런 것도 이해 못 해 줘, 이웃사촌끼리?”

    이웃도 아니고 사촌은 더더욱 아니다. 충격과 절망 끝에 화가 났다.

    “아니, 그 언니는 공사하면서 집도 구하지 않고 뭐 했대?”

    마누라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거지. 평생을 식당에서만 보내서 여행 다녀 본 적이 없거든. 이혼하고 딸 하나 바라보면서 열심히 산 사람이야. 없는 살림에 봉사 활동에 기부까지 한다고. 정말 착한 언니야. 그렇게 고생했으면 보상 좀 받아도 되는 거잖아.”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보상을 왜 내가 해 줘야 하는 거냐고. 식당에서 지내라고 하면 좀 그러려나?

    조급한 마음에 내 말이 빨라졌다.

    “그래도 집은 구해 놔야 좀 안심이 되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거 같은데. 안 그래?”

    “집이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월세라면 잔뜩 있을걸. 무보증에 단기 계약하는 집도 많이 늘었고. 구하기 힘들면 내가 좀 알아봐 줄까? 그쪽으로는 내가 인맥이 좀 있으니까…….”

    마누라가 갑자기 도끼눈을 하고 나를 노려보았다. 해석하면 이렇다.

    ‘이게 계속 참고 들어 주니까 감을 잃었네. 내가 왜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명을 해야 되는 건데?’

    심장이 약간 쪼그라들었지만 3주간의 인생이 걸린 일이었기에 쉽게 물러설 순 없었다.

    “싫다는 게 아니라 나도 계획이 있어서 그래.”

    마누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계획? 나 없는 3주 동안 뭘 하려고?”

    마누라 없는 집 그 자체가 계획이었다. 마누라 심부름 없는 평온한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우물거리며 서 있는 내게 마누라가 단호하게 판결을 내렸다.

    “연락처하고 주소 줄 테니까 우리 공항에 내려 주고 학원으로 데리러 가면 돼.”

    “생전 처음 보는 애를 나 혼자 데리러 가라고?”

    “원래 오늘 데려와서 인사도 시키고 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일정이 있어서 못 했어. 애가 괜찮다고 했다니까 오빠가 그냥 좀 데려와 줘.”

    뭐 이런 경우 없는 경우를 보았나.

    “애는 2층 빈방에서 지내라고 하고. 알겠지?”

    난 대답하지 않았다. 마누라가 대답을 독촉하듯 노려보았지만 그래도 소용없다. 난 한번 아니면 영원히 아닌 확실한 사람이니까.

    “오케이. 결정!”

    마누라는 책상을 손으로 탕탕 치고는 서재를 나가다 말고 돌아서서 경고하듯 말했다.

    “언니가 애지중지 키우는 애니까, 특히, 애 다치지 않게 잘해라. 얼굴에 상처라도 생기면 정말 재미없다. 착한 언니 맘 상하게 하지 말고 신경 써.”

    난 지은 죄도 없는데 마누라는 눈을 부라리며 경고를 하고 나갔다. 마누라가 다음 생애 남자로 태어나서 꼭 자기 같은 마누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간 줄 알았던 마누라가 다시 안쪽을 노려보고 서 있기에 나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머릿속으로 한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나 싶어서. 마누라가 말했다.

    “참, 또 총 쏘고 왔지?”

    말한 적도 없는데 귀신같이 맞히는 마누라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일찍부터 총과 칼을 좋아하는 내 성향에 대해서 걱정을 했기에 마누라는 내가 실탄사격장 출입을 하는 것을 탐탁잖게 여겨 왔다. 그것도 꾸준히.

    “건설적인 취미 좀 가지라고 말하지 않았나? 분명히 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나는 여전히 마누라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추리를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마누라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협조하면 몇 개월은 총 쏘게 해 주지. 오케이?”

    마누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손가락 총을 내게 쏘고는 사라졌고, 나는 여전히 마누라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머리를 쥐어짰다. 화약 냄새는 향수로 가렸고 블랙박스도 사격장에 갈 때는 껐는데 대체 어떻게……. 머리를 감싸 쥐다가 책상 위에 대놓고 펼쳐져 있는 표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마누라가 뛰어난 게 아니라 내가 등신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

     

    두 사람을 태우고 인천 국제공항에 가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의 불편한 심정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에 잔뜩 들뜬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Tour de France(장거리 사이클 대회)의 일정과 계획에 대해 떠드느라 나 따위를 잊은 지 오래였다.

    외동딸을 버리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비정한 이혼녀의 인상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선해 보였다. 하지만 난 인상 따위는 믿지 않는다. 4년 동안 30명 넘게 살해한 테드 번디는 모델 같은 외모를 이용해 살인을 저질렀고, 유명한 살인마 찰리 맨슨의 측근인 수잔 에킨스는 할리우드 배우처럼 생긴 얼굴로 흉악한 짓을 저질렀다.

    공항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린 이혼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런 무리한 부탁 드리면서…… 죄송해요. 어제 애 데리고 찾아뵌다는 게 좀 급한 일이 생겨서 이렇게 됐네요.”

    그래, 죄송해야 할 거다. 아주 많이 죄송해야 할 거다.

    “바쁘시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저보다는 애가 좀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해서요. 처음 보는 아저씨가 불쑥 찾아가면 좀…….”

    “괜찮아요. 얘기도 다 해 놨고 사진이랑 연락처도 다 줬어요.”

    나는 반사적으로 마누라를 돌아보았다. 내 허락도 없이 사진과 연락처를 주다니. 마누라가 ‘뭐!’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았기에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우리 윤지가 행실이 좀……. 아빠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니까 딸처럼 생각해서 잘 좀 보살펴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흘리는 눈웃음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자기 자식에게 ‘행실’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이질감이 느껴진 데다, 오늘 처음 만난 주제에 딸처럼 보살펴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기분 나빴던 건 징그러운 눈웃음이었다. 선술집 여자가 추파를 던질 때나 짓는 값싼 눈웃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고.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꼴 보기 싫은 인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저 이혼녀니까.

    마누라를 의식해 억지로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다녀오세요.”

    의도적으로 ‘즐겁게’라든지, ‘잘’, ‘재미있는’, 이런 단어는 다 빼 버렸다. 나만의 복수랄까.

    이혼녀 뒤로 마누라가 조용히 다가와 도끼눈으로 말했다.

    “표정 관리 안 해?”

    “나? 왜? 나 좋은데, 왜?”

    “웃기고 있네.”

    마누라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애 얼굴에 상처 나지 않게 각별히 신경 좀 써 달라니까, 잘하자. 응? 긴장하고.”

    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쳐 주고는 공항 출국장으로 향했다. 지옥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내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누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글거리며 이혼녀의 팔짱을 끼고는 공항 안으로 사라졌다.

    그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비로소 이 지옥 같은 상황이 현실로 느껴지며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신물이 넘어오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열여섯 살.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 주변인. 정리하자면 몸은 어른인데 뇌는 애 상태인, 겉과 속이 불일치해서 본인도 감당이 안 되는 미숙성 인간을 의미한다. 이 주변인이 겁나는 이유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이다. 나처럼 계획적인 사람에게는 암적인 존재랄까.

    학원 정문이 가까워지자 도로는 정차를 하고 기다리는 차량 행렬로 붐볐다. 정차 중인 다른 차 뒤에 세웠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확인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살핀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시체가 됐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주변인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이혼녀가 찍은 사진 속 여자애는 사진을 거부하듯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고 있었다. 길에서 화장한 얼굴들만 보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을 보니 순한 애처럼 보이긴 했다. 단어가 주는 느낌대로의 소녀. 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여자아이가 하나 떠올랐다. 내 기억 속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고 느껴질 때면 허락도 없이 불쑥 꿈에 나타나 존재감을 내비치고 사라지는 소녀.

    난 고개를 흔들어 버리고 마치 표적을 찾듯이 학원 정문에서 나오는 애마다 사진하고 비교했다. 주변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인간들은 체형 차이만 있을 뿐 생긴 건 전부 거기서 거기였다.

    무리 지어 이동하던 학생 중 하나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내 차 번호판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잠시 후 내 휴대폰에서 메신저가 떴다.

    ─ 연신내 아저씨세요?

    내가 연신내에 살긴 한다. 얘가 내 연고지를 어떻게 알지? 막연한 경계심으로 메시지를 바라보다 뒤늦게 깨닫고 회신을 보냈다.

    ─ 네, 맞아요. 김윤지 학생?

    차 앞에서 알짱거리던 학생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차에 올랐다.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 속 얼굴과 비교했다. 사진 속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하얀 탈바가지가 차에 오르고 있었다. 차에 타는 것만으로도 주변인 특유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뭐든 불편하게 만드는 기운. 이 주변인과 3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거 비싼 차죠?”

    “응, 약간.”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했기에 잘 조정되어 있는 룸미러를 다시 조정했다. 룸미러를 조정하다 깜짝 놀랐다. 분명 하나여야 할 탈바가지가 두 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자 명단에 없는 인물이 딸려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의아해하는 얼굴로 돌아보자 주변인이 말했다.

    “제 친구예요. 같이 타고 가도 되죠?”

    친구란 인간도 주변인 못지않게 화장 기술이 엉망이었다. 게다가 네일아트랍시고 해 놓은 손톱 꼬락서니는 단연 으뜸이었다. 자기가 보기에도 ‘노랑 장미’라고 우기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Yellow Rose’라는 글씨를 네 개의 손가락에 걸쳐서 큼지막하게 써 놓은 게 더욱 흉물스럽게 보였다.

    나는 상냥한 얼굴로 멘트를 날렸다.

    “물론이지.”

    폭탄을 다루듯이 최대한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대해야 했다. 이 주변인 뒤에는 마누라가 수호신처럼 도끼눈을 뜨고 서 있으니까. 나는 친구를 힐끗 보고는 주변인에게 물었다.

    “친구랑 어디 가나 보네?”

    “홍대요. 책 살 게 있어서.”

    주변인들이 안고 있는 커다란 쇼핑백을 힐끗 보았다. 굳이 펼쳐 보지 않아도 클럽에 어울릴 만한 사복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인들은 쇼핑백 입구를 오므리며 발판에 내려놓았다. 주변인이 날 등신으로 보는 게 확실하지만, 내 집에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홍대 방향으로 차를 돌리며 물었다.

    “지금 방학 아니야?”

    주변인은 발판에 내려놓은 쇼핑백을 뒤적이며 짧게 대답했다.

    “네.”

    짧게 대답하고 곧바로 친구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말 섞고 싶지 않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다. 하지만 난 목적이 있었기에 말을 이어 나갔다.

    “방학이면 좀 놀아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들끼리 여행을 간다든지…….”

    룸미러로 주변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여행 계획 없어? 한 3주 정도 다녀오면 좋지 않을까?”

    “우리끼리 여행 가겠다고 하면 그분이 퍽도 보내 주겠네요.”

    그건 네 엄마니까 그런 거지. 난 네 인생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거든. 그래서 힌트를 줬다.

    “엄마 여행 중이시잖아.”

    주변인이 못마땅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분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게 딱 두 개가 있어요. 어디 상처 나는 거하고 그분 레이더에서 벗어나는 거.”

    “엄마가 엄하시구나?”

    “글쎄요. 그걸 엄하다고 해야 하나…….”

    뒷말을 기다렸지만 주변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협박 따위 간단히 무시하는 날라리이길 바랐는데, 애석하게도 아닌 모양이다. 나는 면피할 명분만 있다면 눈앞에서 마약 파티를 벌여도 상관 안 할 자신이 있는데.

    내가 말했다.

    “윤지 학생 잘 부탁한다는 말씀 말고는 별다른 말씀 없으셨어. 3주간의 여행을 못 가게 하라는 말씀은 더더욱 없으셨고.”

    그건 사실이었기에 당당하게 말했다. ‘3주간의 여행’을 다시 한 번 강조했지만 이 눈치 없는 주변인은 못 알아들은 표정이었기에 한마디 더 했다.

    “사람이 원래 융통성을 발휘해야 사회생활을 더 잘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주변인을 바라보았고 주변인은 내 표정을 읽으려는 듯 빤히 마주 보았다. 내가 말을 이었다.

    “차 없는 도로라면 필요할 때 중앙선도 살짝 넘을 수 있는 거지. 살다 보면 그래야 할 때가 있거든.”

    주변인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생각이 복잡해진 얼굴이었다. 절반은 성공이다. 조금만 더 작업하면 넘어갈 것 같다.

    “공부 잘해?”

    불쑥 던진 내 질문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내가 말을 이었다.

    “학교 가고 학원 가고 책상에 앉아 있는다고 공부가 되는 건 아니야. 쉴 때는 적당히 쉬어 줘야 효율이 높아지는 거지. 그리고 이제 중3이잖아. 앞으로 고딩 되면 놀 시간 더 없어질 텐데, 마지막 중학교 생활인데 추억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지. 그러라고 방학이 있는 거 아니겠어?”

    표정을 보니 거의 다 넘어왔다. 눈알을 굴리던 주변인이 친구와 함께 뭔가를 속삭였다. 좋은 징조다. 상의를 마친 주변인이 내게 말했다.

    “며칠 놀러 갔다 와도 될까요?”

    바로 그거야! 기특한 녀석. 하지만 너무 기쁜 티를 내면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표정 관리부터 했다. 그리고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적인 문제도 따져 봐야 한다.

    “음…….”

    난 일부러 뜸을 들이고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하나만 약속하면.”

    “뭔데요?”

    “엄마가 돌아오시기 전하고 똑같은 상태여야 할 것.”

    주변인의 눈동자가 내 말을 이해하려는 듯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을 해야 했다.

    “너도 아까 말했듯이 다치는 건 절대로 안 되겠지? 상처는 엄마 눈에 금방 띌 테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안 되고, 그런 일에 연루되는 것도 안 되고. 또…….”

    허공을 향해 있던 주변인의 시선이 내게로 내려왔다.

    “그러니까 증거만 안 남기면 된다는 거잖아요.”

    주변인 이 자식, 약간 맘에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런 직설적인 질문에 직설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난 엄마 친구의 남편이고, 격조 있는 어른이어야 하니까.

    “엄마가 아시면 걱정하실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지.”

    다시 허공을 바라본 주변인이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그분한테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이 녀석은 사회생활 잘할 게 분명하다. 말귀만 잘 알아들어도 상사의 인정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굳이 쉽게 말하자면 그런 거지.”

    주변인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진짜요? 비밀로 해 주실 거예요?”

    “아저씨는 열린 사람이야.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랄까?”

    말귀 알아들었으면 이제 각자 갈 길 가자고. 마누라 귀국하는 날에만 같이 마중 나가는 퍼포먼스 하나면 충분하잖아.

    “요새 학생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러니까 이런 때라도 좀 쉬어 가는 것도 좋아. 아저씨도 학생만 할 때 친구들하고 여행도 가고 그랬어.”

    주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친구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친구는 살짝 놀란 얼굴로 주변인을 돌아보았지만 주변인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내게 말했다.

    “그럼 오늘 친구네서 자고 가도 돼요? 여행 계획도 짜고 또…….”

    그러시겠죠. 난 주변인이 쓸데없는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말을 잘랐다.

    “그래 그럼. 어디로 가는지만 알려 주고.”

    주변인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얘네 집 연락처 알려 드릴까요?”

    저렇게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미리 준비를 다 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난 저 애들이 어디서 뭘 하든 궁금하지도 않고.

    “아니야. 네 휴대폰 번호 있는데, 뭐. 내 연락처 가지고 있지?”

    “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백날 전화해 봐라, 내가 받나. 내가 제법 편해진 건지 믿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주변인은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나중에 그분한테 이르고 그러시는 거 아니죠?”

    난 걱정 말라는 듯 가슴을 두드려 보이고는 대답했다.

    “다치지만 않으면.”

    “안 다칠게요.”

    “그럼 됐어.”

    “약속해요.”

    주변인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런 유치한 동작은 원래 사춘기 애들이 더 싫어하지 않나? 난 주변인이 내민 손가락을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내 기억에 깨끗한 십 대들은 본 적이 없다. 코를 후비거나 양말을 만진 손 그대로 햄버거를 먹는 더러운 종족이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는 용변을 보고 손도 안 씻고 나간다.

    하지만 분위기상 안 잡을 수가 없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잘라 버릴 각오로 주변인 손가락에 살짝 걸었다. 그러자 주변인이 갑자기 손 방향을 돌려 악수하듯 내 손 전체를 잡았다. 순간적으로 경악했기에 오히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건 카피.”

    자신의 손바닥을 내 손바닥에 문지르는 꼴을 지켜보며, 시트 아래 있는 나이프를 꺼내 주변인 손목을 날리는 상상을 했다.

    난 서둘러 손을 놓고는 말했다.

    “너야말로 꼭 약속 지켜. 다치지 말 것. 오케이?”

    내 집이 주변인에게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주변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손을 아래로 숨기고는 항균용 물티슈로 닦으며 물었다.

    “돈은 있어?”

    “돈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들었다. 집히는 대로 넉넉히 집어서 주변인에게 내밀었다.

    “여행 경비에 보태. 맛있는 거 사 먹고.”

    내가 내민 돈을 본 주변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놀란 건 주변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두툼한 돈 다발에 주변인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는 얼른 받으라는 듯 돈을 흔들어 보였다. 주변인은 돈에 시선을 꽂은 채 말했다.

    “우리 나이에 이렇게 큰 돈은 독이 된다고 그랬어요.”

    맞는 말이야. 바로 그거지.

    녀석이 망설이는 척을 하는 바람에 난 할 수 없이 꼰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주는 건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거야.”

    주변인은 놀란 얼굴로 켜켜이 쌓여 있는 5만 원짜리 지폐 앞에 손을 내밀었다. 난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주변인의 손 위에 돈을 올려놓았다. 주변인은 나를 만난 이후 가장 예의 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절대 다치면 안 된다는 약속 잊으면 안 돼. 그 약속 지키라고 주는 거야. 계약 어기면 두 배로 위약금 물어야 하는 거 알지?”

    돈에 눈이 팔린 주변인은 들뜨는 마음을 예의상 간신히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아저씨.”

    이걸로 계약 성립이다. 이 시간 이후의 책임은 주변인에게 있는 것이다.

    “홍대 근처인데 어디에 내려 줄까?”

    “아무 데나 편한 곳에 내려 주세요! 알아서 갈게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돈 몇 푼으로 귀찮은 아저씨에서 쿨한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이건 봉건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돈이라면 신분도 살 수 있었으니까. 세상이 달라진 게 있기나 한 걸까?

    난 복잡한 홍대 전철역 전에 두 사람을 내려 주었다. 주변인이 내린 자리에 학생증이 떨어져 있었지만 귀찮아서 부르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고 나는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학생증을 집어 대시보드 위에 던져 놓고는 오염 지역에서 벗어나듯 재빨리 차를 출발시켰다. 3주간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 집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니까.

    죽어도 되는 아이

     

    2.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연락이 온 건 새벽 두 시가 넘어서였다. 모르는 전화번호였기에 세 번은 가볍게 무시했지만 네 번째는 약간 갈등이 생겼다.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싶어서.

    내게 연락을 할 만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새벽에 전화를 하면 안 된다는 상식 있는 부류와 이 시간에 전화하면 내 손에 죽는다는 것을 아는 부류. 분명 모르는 번호였지만 누가 연락한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상식도 없고 내 손에 죽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마누라 말고는 주변인뿐이니까.

    갈등하는 동안 주변인의 전화는 끊어졌지만 내가 먼저 걸 생각은 없었다. 누운 그대로 잠시 휴대폰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휴대폰은 잠잠했고 난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의식이 저편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휴대폰이 울렸다. 이 순간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마치 휴대폰이 주변인 머리끄덩이라도 되는 듯 낚아채서 잡고는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요?

    어이없다. 자고 있는 사람 깨워서 짜증을 내고 있다.

    “새벽에 전화질을 하니까 안 받지.”

    곱지 않게 튀어 나간 말에 주변인의 말이 잠시 끊어졌다. 마누라 친구 딸이라는 걸 뒤늦게 떠올리고는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

    “무슨 일이야?”

    누가 들어도 화난 목소리였다. 망설이던 주변인은 약간은 주눅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 배가 아픈 거 같아요.

    아픈 거 ‘같으면’ 십중팔구 꾀병이다. 거짓말을 하려니 찜찜한 마음에 제삼자처럼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근처에 병원 찾아봐. 응급실 있는 곳으로.”

    ─ 없어요.

    찾아보지도 않고 없단다.

    “지금 어딘데?”

    ─ 홍대요.

    책 사러 홍대에 간다더니 24시간 운영되는 서점이 있는 모양이다.

    “택시 타고 신촌 세브란스로 가 달라고 해.”

    주눅 들었던 목소리에 짜증이 깃들었다.

    ─ 아저씨, 저 지금 아픈 거 같다고요.

    “좀 기다려 보고 확실히 아프면 그때 전화해.”

    ─ 아저씨!

    버럭 지른 고함 소리에 잠이 확 깼다. 아무래도 지금 혼나고 있는 느낌이다. 주변인이 조금은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아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친구는 어디 있어?”

    ─ 좀 데리러 와 달라고요!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른 주변인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다. 인간도 사용 매뉴얼이 동봉된 채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내 딴에는 달래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울어?”

    우는 소리 사이로 띄엄띄엄 소리 질렀다.

    ─ 좀 와 달라고요!

    그렇게 소리 지르고는 아예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우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택시 타고 집으로 오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분위기상 그럴 수가 없었다.

    “알겠어. 홍대입구역으로 가면 되나?”

    ─ 네, 주차장 골목요.

    울면서도 자기 위치는 정확히 밝히는 게 왠지 얄미웠다.

    “카페에 들어가 있어. 도착하면 전화할게.”

    자동차 열쇠를 집어 들고는 잠시 서서 숨을 골랐다. 집에만 들이지 않으면 된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홍대로 가는 내내 짜증이 자꾸 치밀었다.

    그나마 새벽이었기에 도로가 뻥 뚫려 있어서 자동차 속력으로 화풀이를 했고, 그 덕분에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며 전화를 걸었다. 대충 둘러봐도 카페가 네 개나 되었기에 육안으로는 찾을 길이 없었다. 주변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반복해서 거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혈압이 올라갔다. 심호흡으로 화를 가라앉히며 가장 큰 카페 주차장으로 향했다.

    건물 전체가 카페인 그곳엔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빈자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공부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3층까지 올라가 봐도 혼자 앉아 있는 여학생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3층을 둘러보던 중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남자 맞은편에 눈에 익은 하얀 탈바가지가 보였다. 아프다던 주변인이 예쁜 척하며 웃고 있었다.

    저 탈바가지를 테이블에 내리찧는 상상을 하며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예쁜 척을 하던 주변인은 나를 알아보고 멈칫했고, 그런 기색을 눈치챈 맞은편 남자도 덩달아 멈칫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덩치만 성인이었지 남자도 솜털이 뽀송한 십 대였다.

    그 옆 빈 테이블에 앉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올라간 내 혈압은 아랑곳없이 수다나 떨고 있는 주변인의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탈바가지를 피부째 벗겨 버릴까. 아직 어린 피부라 맨손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이 진짜이기를 바라면서 난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입을 열면 욕부터 튀어 나갈 테니까.

    남자애가 입 모양만으로 주변인에게 ‘누구?’라고 물었고 주변인은 준비한 듯 대답했다.

    “삼촌이에요.”

    너 같은 조카는 둔 적이 없습니다만. 남자애가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윤지 학교 선배예요.”

    “네, 반가워요.”

    난 형식적으로 인사를 받아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센스 있는 어른인 것처럼 주변인을 향해 말했다.

    “데이트 방해한 것 같은데 난 이만 빠지는 게 좋겠지?”

    남자애가 손사래를 치며 대신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묻지도 않은 녀석이 대신 대답했고, 이번엔 남자애에게 말했다.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럼 난 이만…….”

    “저도 지금 막 집에 가려고 했어요.”

    남의 속도 모르고 끝까지 부정한다. 허허, 녀석……. 초면이지만 죽여 버릴까? 돌이켜 보면 내 손에 죽은 놈들 대부분은 초면이었다.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정말인가 보다.

    난 자리에서 일어서며 남자애에게 통보했다.

    “아니에요. 방해 안 할게요. 윤지가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으니까 신경 좀 써 주고.”

    남자애가 나를 따라 일어섰고, 주변인은 남자애를 따라 일어섰다. 남자애가 말했다.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우연히 만나서 얘기 좀 잠깐 한 거예요.”

    이 새끼 진짜 죽여 버릴까?

    내가 말했다.

    “오늘 금요일인데 불금 해야죠, 불금. 그 나이 아니면 언제 그렇게 놀아? 안 그래요? 힘닿는 데까지 놀아요. 내 나이 되면 그러고 싶어도 못 하니까.”

    난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까지 했지만 녀석은 올곧은 성격인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말 아닙니다. 이렇게 늦었는데 저도 들어가야죠.”

    격려를 하는 내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좀 더 놀아도 될 것 같은데.”

    “엄마가 기다리세요.”

    난 좀 거들라는 의미로 주변인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주변인은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오빠 집 어디라고 그랬죠? 삼촌 차 타고 같이 가요. 가는 길에 내려 줄게.”

    운전면허증도 없는 게 남의 차 가지고 오지랖이다. 주변인의 말에 남자애 표정이 흔들릴 것 같아 재빨리 내가 먼저 말했다.

    “그럼 먼저 들어가요. 난 윤지랑 잠깐 얘기할 게 있어서.”

    남자애는 자기도 탈것이 있다는 듯 오토바이 열쇠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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